어느날 갑자기: 네번째 층

Posted 2006/08/19 03:02, Filed under: 영화와 TV
저예산 공포영화 [어느날 갑자기] 시리즈 중 두 번째 이야기 [네번째 층]. 모녀는 4층이 없는 오피스텔의 5층, 그러니까 실제로는 네번째 층에 이사간다. 엄마(김서형 분)는 직장을 나가기 위해 부득이하게 딸을 집에 혼자 두거나 다른 사람한테 맡긴다. 주변에 자꾸 사람이 죽고 딸은 귀신한테 씌이고, 엄마는 문제가 있다는 걸 눈치채지만 조기수습에 실패하고 결국 정면돌파하게 된다.

[D-day]에서 공포의 장소인 학원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입시였다면, [네번째 층]에서는 귀신이 있는 오피스텔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딸이다. 이유가 없다면 물론 공포의 공간을 탈출하기만 하면 되는데 말이다. 어떤 공포영화들에선 귀신을 찾아나서는 주인공이 짜증나게 호기심 많아 보인다면, 이런 이야기에서는 (진부하더라도) 이유가 있는 것이 된다. 딸이 인질이기 때문에 남겨두고 도망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직장다니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도 적절했는데, 딸이 귀신화된 가장 큰 이유는 "먹고사느라 바쁜 엄마의 부재"라는 것이다. 딸이 이상한데도 딸을 위해 단 하루 결근하는 것이 어려운, 그래도 또 하루를 비우고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진정한 공포는 '일상성'이다. 위험신호가 울리는 자연적인 본능을 거스르고 그 자리에 붙어있어야 하는, 출근, 야근, 월급, 이력 같은 것의 힘.

김서형은 마음에 드는 얼굴을 가졌다. 서늘하면서 현실적인 얼굴. 영화도 잘 만들었다.

2006.8.18. 닭의비행.

어느날 갑자기: D-day

Posted 2006/08/19 02:41, Filed under: 영화와 TV
저예산 공포영화 [어느날 갑자기] 시리즈 중 세 번째 이야기 [D-day]. 재수 기숙학원의 엄격한 규율 속에서 생활하게 된 여자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큰 소리 한 번 안내면서도 철저히 복종시키는 학원의 훈육, 저항할수록 부메랑처럼 돌아와 더욱 커지는 고통. 귀신을 볼수록 고통이 커지고, 고통이 크면 성적이 떨어지고, 그것이 다시 고통이 되어 심신이 약해진만큼 귀신에 취약해지는 그런 벗어날 수 없는 이야기. 학원을 탈출하고 싶을만큼 절박하지만, 숨이 달랑달랑 할 때까지 학원에 붙어있어야 하는 '대입'이라는 강한 동기. 내가 생각했던 모든 요소가 이미 구현되어 있어서 낭패.

공포물의 가장 큰 교훈은 "고통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항상 (과도한) 고통에 처해서 살아가고, 그래서 고통의 신호는 항상 false alarm이 된다. 압력이 90일 때 멈춰야 하는데, 모두를 압력 99까지 끌어올리는 상황. 90에서 울리는, 제대로 된 알람이라면 항상 고장나있을 수밖에 없다. 근데 성적이 떨어지는 것보다 죽는 게 덜 무섭다. 추락의 끝이 있잖아. 그래서 긴장 해소!

[여고괴담] 시리즈의 대를 잇는 잘 만든 영화. [네번째 층]과 더불어 저예산, 신인감독, 신인배우로 이 정도 퀄리티가 나와준다면 우리나라 영화판은 별 문제 없을 것 같은데.

2006.8.18. 닭의비행.

프로젝트 마노, 탐구생활 전

Posted 2006/08/18 21:28, Filed under: 만화

[프로젝트 마노]가 여는 전시회 [탐구생활] 전에 다녀왔다. 8/16~8/29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 위치한 [광화랑]에서 열리며 무료 관람. 변병준, 곽상원, 최인선, 문흥미, 이향우, 아이완 6명의 만화가의 전시로 이루어져 있다.

하필 광화문 역 안에 또 다른 전시장이 있어서 한참 돌고 돌아서 겨우 도착했다. 전시장이 있다길래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나왔더니 다른 곳, 표를 끊고 나온지라 역 밖으로 돌아가야 해서 큰 길을 건너고, 교보문고 쪽이라더니 입구는 모르겠고, 교보에서 화장실 한번 가려고 하니 줄이 이만리라 포기, 다시 지하도로 나오니까 전시장이 있었다. 처음부터 교보문고 쪽 5,6번 출구로 나오면 일이 간단하지만 반대쪽으로 나오면 완전 낭패. 낮이었는데 별로 덥진 않았고, 관람객도 꽤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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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통한 접근

Posted 2006/08/05 00:01, Filed under:
[통일독일을 말한다] 시리즈는 1권 [머릿속의 장벽 : 통일 이후 동·서독 사회문화 갈등], 2권 [변화를 통한 접근 : 통일 주역이 돌아본 독일 통일 15년], 3권 [나의 통일 이야기 : 동독 주민들이 말하는 독일 통일 15년] 이렇게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그 중 유명인사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진 두번째 권을 읽었다. 신기하게도 외국 책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한국 연구자들이 독일에 가서 화두를 던지고 여기저기 들쑤시며 만들어낸 책.

독일 통일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90년대 초반 통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정확하게는 90년인 듯), 그리고 그로 인한 부작용이 특히 동독 쪽에 상당히 컸다는 것 정도다. (참고로 [굿바이 레닌]은 약간 썰렁하긴 하지만 통일을 맞은 동독 지역의 후유증을 보여주는 영화.)

이 책은 여러 사람들- 지식인, 운동가, 언론인, 정치인-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통일 그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를 들여다본다. 동독 내의 좌파지식인 출신이 많은데, 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공통된 질문을 던지고 제각각의 대답을 듣는 것이 묘한 느낌을 준다. "한 개의 진실은 없다"는 느낌이랄까. 영화, 소설 등에서 등장인물들이 각각 조금씩 엇갈리게 진술하는 그런 것들이 이미 어떤 예술적 도구로 승화(?)된 것 같은데, 그래서 나는 그것이 예술이 아니라 현실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런 게 과장이라고 생각했다는 거지. 그런데 통일의 그 순간에 대해, 경제적 여파에 대해, 과거 청산 방식에 대해, 동독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각각 진지하게, 그렇지만 너무나 엇갈리게 진술하는 걸 보면서 이게 여러 개의 진실이구나 느꼈다.

독일 통일 과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통일이 한 쪽의 완전한 항복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인 것 같다. 서독이 성공적 모델인지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는지는 논란이 있겠지만, 동독이 실패한 체제라는 데는 거의 모두가 동의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무가치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굉장히 괴로운 일이다. 동독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하위층에 흡수되고, 정치적으로도 서독 출신에 눌리면서 전체적으로 동독의 가치 자체를 부정하게/부정당하게 되었다.

헌법적으로 합병-통일과 흡수-통일이 가능했는데, 짧은 타이밍을 놓치면 통일이 물건너갈 상황과 동독 사람들의 조급했던 마음 때문에 보다 빠른, 그렇지만 후유증을 남긴 흡수 통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다른 동구권 국가들이 어렵게 스스로 변화를 이룬데 비해 동독은 부유한 서독으로 인해 그 과정을 거저 얻었고, 쉽게 얻은 것은 공짜가 아니었다. 동독 사람들은 부유한 국가의 2등 국민이 되었다.

공산주의 사회의 질서와 자본주의 사회의 질서는 굉장히 다른데, 문제는 그 눈에 안보이는 차이들이다. 이런 질서를 몸에 익히는 것은 사실상 한 세대를 소비해버리는 것 같다. (인생무상) 통일 당시 서독 마르크화와 동독 마르크화를 1:1로 교환하는 파격적인 조건이 있었는데(어느덧 마르크가 유로화로 대체되었으니 이 또한 인생무상), 당장은 풍족했지만 동독의 기업들은 그 환율을 견딜만한 경쟁력이 없었다. 동독의 기업들은 파산하고 서독 기업에 인수되고, 많은 동독인들은 해고되었다. 서독 경제 질서의 하층 노동자로 편입되거나 ([굿바이 레닌]에서 누나는 맥도널드 점원이 된다.) 실업 급여를 받는데, 이는 동독 사람들의 열등감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동독 독제하의 비리들을 청산했는데, 이는 감시당하며 살던 동독인들의 열망이었지만 동시에 대단히 많은 사람들을 첩자로 낙인찍어 퇴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작든 크든 비밀경찰의 첩자노릇을 했던 거의 대부분의 지식인/정치인/언론인 등은 퇴출되었고, 그 빈 자리인 신세계에는 서독인들이 와서 자리를 다 차지했다. 죽쒀서 뭐준 꼴이 된 것이다.

사실 통일 전의 서독-동독 교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놀라운 게 많았다. 교류가 허용된다니! 게다가 동독 말년에는 정부가 합의해준 서독으로의 이주도 많았다고 하는데, 휴전선을 넘으면 등뒤에 총탄을 맞을거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놀라운 일일 뿐. 동독에서 교회에는 상당히 많은 자유가 허락되었다는 점과, 반면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소수로 뚜렷이 구분되어 있고 사회적 낙인이 있었다는 것도 신기하다. 인터뷰 대상자 중에는 부모의 영향으로 기독교였던 사람이 상당히 많았는데, 모태 신앙이 아니라 모태 혁명가 집안에 가깝다.

인터뷰 대상자들 중에 세부적 의견차는 있어도 사회에서의 기본적 좌표가 비슷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책을 2/3쯤 읽다보면 좀 지루해진다. 사실 유명인들의 인터뷰는 엘리트주의적인 요소가 있고, 그래서 평민(?)들의 진술인 3권도 읽으려고 했었는데. 아뿔사, 왜 그렇게 과장된 사투리로 번역을 해놓았는지 ㅠ_ㅠ 거부감 때문에 포기.

2006.8.4. 닭의비행.

통일독일을 말한다-02 변화를 통한 접근: 통일 주역이 돌아본 독일 통일 15년
김누리,오성균,안성찬 등저 | 한울아카데미 | 20,000원


엘리펀트

Posted 2006/08/04 23:07, Filed under: 영화와 TV
약간의 호기심은 있었지만 굳이 보게 되지는 않았던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를 곰TV 오픈기념무료행사로 보았다. 왜 평론가들의 입에 오르내렸는지 이해가 되는 대단히 신기한 영화였다.

내가 익히 보던 영화들과 아예 다른 종류의 미학을 추구한다. 가령 오케스트라를 듣다 순수 타악기로만 이루어진 연주를 듣거나 서양화를 보다 동양화를 봤을 때 같은, 동일한 기준으로는 그 수준을 비교할 수 없을 것 같은 관계. 내가 보던 영화들은 대개 비슷한 형식을 갖췄고, 얼마나 잘 갖췄느냐에 따라 잘 만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비교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영화에 익숙해져감에 따라 전반적으로 점점 밀도가 높아져가는 추세인 것 같았는데. (제리 브룩하이머 스타일이랄까.)

반면 [엘리펀트](Elephant)는 밀도를 1/3 정도로 확 낮춘 영화다. 시나리오만 보면 단편처럼 보일 것 같은데 81분짜리 약간 짧은 장편이고, 그 긴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물론 개인차가 크겠지만.) 왜 빈 공간이 있어도 공기가 차있는 느낌. 한국화에서 흰 여백을 풍성하게 다룰 줄 아는 것. 미숙하고 간결한 피아노 선율, 인공적이지 않지만 색채가 예쁜 화면. 게다가 긴긴 오프닝/엔딩을 구름이 흘러가는 고정된 화면으로 채워서 점점 기발해져가는 영화 오프닝 추세에 역펀치.

혁명을 팝니다 (조지프 히스,앤드류 포터)

Posted 2006/08/04 20:59, Filed under:
체 게바라를 파는 스타벅스 컵, 그리고 제목. 나는 이 책이 혁명마저도 잡아먹어버리는 뻔뻔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인줄 알았다. 그래서 한참동안 이 책의 논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헤멨다. 탐욕스런 자본주의와 소비주의를 비판하는 것들, [아메리칸 뷰티]와 [파이트 클럽], [노 로고] 등의 영화/책들, 내가 즐겨 보았던 그런 것들이 모두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이고 적절히 문명비판적인 내가 바로 오늘의 횟감이었던 거냐?!

저자들은 '반문화'라는 것에 대해 비판을 하는데, 반문화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나에게는 한동안 이해가 어려웠다. 기존의 체제를 거부하는 것, 덜 건전하게 사는 것, 자본주의와 상업주의와 대량생산체제를 거부하는 것, 히피가 되는 것? 가령 머리를 기르고 마약을 하고 경찰한테 개기고 직접 만들어 쓰고/먹고 고루한 양복쟁이를 비웃고. 저자들은 이런 세대의 자식으로 태어났고, (누군가의 표현을 빌면) 정-반-합처럼 반문화에 대한 반대/비판을 펼친다.

(책의 예시에 나의 예시를 과감하게 섞어 믹스. 원전에 없다고 따지지 마셈)

1) 소비주의

자본주의, 브랜드, 소비주의의 상징인 맥도널드, 나이키가 있다고 하자. 사람들이 그것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어떻게 되었나? 체인이 아닌 작은 가게들에서는 기름기 없는 햄버거/샌드위치를 6천원~만원에 팔고, 친환경적인 바디샵은 만원짜리 샤워젤을 판다. 일본에서 직수입한 [무지]는 가공이 거의 없고 친환경적으로 보이는 소도구와 가구들을 사치스런 가격에 판다. 히피들은 나이가 들자 자유로운 분위기의 SUV 자동차를 구매했고, 자동차 가격과 크기를 더 부풀려놓았다.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벗어난건가? 아니다, 더 비싼 가격에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을 만족시키는 상품을 구매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는 반문화의 근원지가 아니기 때문에 "예쁘면 산다"는 개념이 더 강한 것 같다. 나를 포함해서. 표피만 수입한 대신 '위선'은 훨씬 적은 셈이다.) 사람들이 기업에서 벗어나려고 했는데, 기업이 쫓아와서 그것마저 잡아먹어버린 건가? (많은 소비주의 비판은 여기서 "예"라고 대답한다.) 아니다, 반문화 자체가 이미 소비적인 특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부분 약간 모르겠;)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기존 것을 거부하고 뛰쳐나간 아이들에 의해 한 단계씩 발전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포드가 됐건 유기농 식품이 됐건, 그런 이단아들은 자본주의의 기존 매커니즘의 일부다.

2) 획일성

대량생산과 획일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비판한다. 그렇지만 그건 자본주의 발달 단계 중 하나였을 뿐이다. 이제 한 생산라인에서도 다양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고 (Flexible Manufaturing System) 획일성으로 산업사회를 비판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또한 좀 획일적이면 어떤가? 적은 비용에 더 많은 집을 지을 수 있고 그로 인해 빈곤이 해결될 수 있다면 획일성이 그렇게 대순가? 물론 획일성이 강요되면 안좋긴 하지만 보라,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획일성을 택하고 있다. 싼 값에 좋은 물건을 얻을 수 있어서이기도 하고, 주택보다 아파트가 매매가 더 잘되는 것처럼 '남들이 좋아할 것 같은 것'을 사람들이 더 선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약간 반론으로 나는 획일성-가격효율성이 소수자 문제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3) 중앙집중형

중앙집중적인 거대한 원자력 발전소보다 시골 곳곳에 분산된 작은 태양열 발전기가 더 인간적이고 자연친화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형사고를 일으키는 지하철보다 개인적인 자동차가, 획일적이고 억압적인 공공교육보다 과외와 홈스쿨링이, 식중독 사고를 일으키는 대량급식보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이, 감당못할 규모의 펀드를 형성하는 국민연금보다 사적 노후대비가 더 좋은가?

고도화된 중앙집중형 거대 시스템의 비인간성과 붕괴 위험에 대해서는 나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근데 문제는 이런 것이 대개 가난한 이들에게 고른 혜택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비인간적인 거대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사랑이라니 ㅠ_ㅠ 체제에 대한 혐오로 이런 중앙집중형 시스템을 거부했을 때, 과연 세상이 더 살기 좋아질 것인지 저자들은 반문한다.

그러니까 자꾸 혐오하고 반대하고 뛰쳐나가지 말고, 기존 체제에 관심을 갖고 법 하나라도 더 고쳐나가고 뭔가 실제에 더 도움이 될만한 일을 해보라는 결론인 것 같다. 가출 청소년, 자꾸 "아빠 미워"만 하지 말고 집에 돌아와서 니 뜻에 맞게 대를 이어라... 이런 식이랄까.

2006.8.4. 닭의비행.

꼬리. 면생리대 문제가 가장 가까운 사례가 아닐까 싶다. 면생리대를 직접 만들라 하니 잘 보급이 안되고, 원가를 몇 배로 뻥튀긴 기성제품을 사는 것은 자본주의에 말리는 꼴이 된다. 다른 친환경적 제품들은 애초에 우리나라에 그 정신이 아니라 스타일만 수입된 것이기 때문에 윤리적 갈등은 별로 느끼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만세!
꼬리2. 책 리뷰는 어쩐지 작심하고 해야되는 듯한. 그리고 늘 내용을 다 이해 못한 것 같아서. 그래서 미루게 된다.
꼬리3. 지나쳐버리셨다면, 이 기회에 "고도화된 거대 시스템의 실패"를 다룬 명작(응?) [거대한 문화유산]을 읽어봄도 좋지 아니하겠는가?!

혁명을 팝니다
The Rebel Sell
조지프 히스,앤드류 포터 | 마티 | 17,000원



헷지

Posted 2006/07/30 01:06, Filed under: 영화와 TV
별 기대않고 봤는데 제법 재미있었다. 물론 아동물이고, 간단하고 귀여운 모험담이란 내용이나 가족적인 따뜻함이란 주제나 다 뻔한 감이 있지만 그래도 프로페셔널의 내공이 있다고나 할까? 동물들도 모두 귀여웠고, 난 역시 거북이가...♡ 정확히 의도한 만큼 귀여워...! 라고 소리치게 해주고, 웃게 해주고, 위기의 순간에 마음졸이게 해준다.

게다가 특별한 보너스가 있었는데 그건 객석의 절반 정도를 채운 꼬마들이었다. 순간순간 흡-하며 숨을 들이키거나 까르륵거리는 꼬마들의 자잘한 소음들이 정말 재미있었다 >_<b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엄마, XXX가 무슨 뜻이야?"라고 물어보는 작은 목소리라든지.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잘 맞았는데 황정민, 신동엽, 보아의 목소리라는 건 전혀 눈치 못채겠던데? 나만 그런가? 헷지(Over the Hedge)는 '울타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난 계속 '헷지'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나오는 줄 알았다구. -_-;; 영화관에 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초반을 놓쳐서 아쉽.

서울1945

Posted 2006/07/18 00:34, Filed under: 영화와 TV
한국 근현대사의 해방과 전쟁 즈음을 다룬 드라마. 딱딱하고 지루할 것 같아 (게다가 예쁜 시대는 아니잖아) 초반부에 외면하다 의외로 재미있어 그 뒤론 쭉, 주말에 약속도 (원래 없지만) 많이 잡지 않고 챙겨보고 있다. 젊은 주인공 4인방인 최운혁(류수영 분), 김해경(한은정 분), 이동우(김호진 분), 문석경(소유진 분) 배우들 중 어느 누구도 존재감이 있는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이 드라마를 보면서 많이 좋아하게 됐다. 특히 소유진은 그저그런 하이틴 스타로 생각하고 있다가 앳된 외모와 다른 강한 연기에 감탄.

가난한 집안의 수재 운혁, 석경의 시녀로 살았던 가난한 집안의 맏딸 해경, 대대로 부자인 명문가의 아들 동우, 일제하에 급부상한 친일파의 딸이자 피아니스트인 석경. 이념적으로 요약하자면 학교 친구지간인 오철영(이병욱 분)은 공산주의자고, 운혁은 중립, 동우는 미군쪽인 자본주의 계열이다. 석경은 태생적으로 권력지향적이라 해방 후에 이승만 우파에게 붙었고. (사실 동우는 이념이 그리 강해보이진 않지만. 그리고 자본주의의 이념은 그다지 세상에 확립이 안되어있는 듯?) 애정적으로 요약하자면 운혁과 해경은 서로 사랑했고, 석경은 운혁을 짝사랑하다 한때 약혼자였던 동우도 놓쳤으며, 동우는 월북한 운혁을 대신해 해경과 연인이 된다.

드라마에 의존해서 역사를 공부하면 안된다고 하던데 나는 [서울1945]를 보며 현대사의 많은 부분을 배우고 있다. (이승만이 정말 비호감으로 나오기 때문에 이승만 양아들의 꼬장이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친일파와 미군 의존성은 사실이잖아? -_-) 물론 제작자 측이 "이건 멜로드라마일 뿐"이라고 주장하니 나도 굳이 진실을 주장하진 않겠어.

드라마를 보면 한때 "조국을 위해"라는 한 가지 이념을 가졌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고 자기 상황 속에서 노력하면서 차츰 어떻게 다른 세력들로 갈라져가는지를 볼 수 있다. 철영-운혁-동우의 삼각구도가 그래서 중요한데, 이들은 친한 친구간이지만 차츰 밥먹는 자리에서도 이념적으로 다투고, 나중에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상대를 죽일 수도 있는 사이가 된다. 운혁은 철영을 소중히 여기지만 철영의 과격함과 잔인함에 고개를 젓고, 철영은 개인적인 우정과 관계없이 부르주아에 친일, 친미파인 동우는 처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석경은 자신과 비슷한 종류의 강렬함을 지닌 운혁을 사랑했지만, 골수 우파인 석경과 좌파 이상주의자인 운혁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조국을 위한다고 생각하고 미군을 도왔던 온건한 부잣집아들 동우는 어느덧 미군이 한반도를 갈라먹고 이상적인 정치인들이 배척당하고, 한때 친일파였던 사람들이 정치권에 슬금슬금 포진하고 남한에서 좌파의 뿌리가 뽑히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어쩌지 못한다. 친일파였던 아버지가 태연히 권력층에 재진입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버지와 단호히 갈라서지 못하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주변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호의를 베푸는 것에 그친다.

"이승만은 친일파 돈을 마음대로 쓰는데, 공산당에서 위조지폐 찍는 게 대수냐?"라는 나름대로 논란이 되었던 대사는, 다소 이해가 안되는 공산주의자들의 생각을 드러내는 대사다. 이 말을 계기로 운혁은 공산주의자인 문동기/철영에게서 마음을 돌리게 된다. 이 간극은 점차 확대되어 나중에는 북한의 김일성/박헌영이 남침을 주장하는데, 통일이란 명분이 전쟁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믿는 문동기는 이들에게 실망하고, 또한 같은 이유로 운혁은 문동기/철영에게 실망하고, 해경은 운혁에게 실망한다. 이게 아닌데, 이건 우리가 꿈꾸던 세상이 아닌데 하면서도 동우는 우파에, 운혁은 좌파에 끌려다닌다.

사실은 운혁을 좋아하지만 요즘은 사적 인간관계를 다 구제하면서 원칙과 이상을 운운하는 것 같아 약간 실망했고, 골수 우파에 권력지향적이고 친일파에 친미파인 문석경을 들여다보자. 그는 도덕적이지 않으면서 자존심이 강한, 열정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게다가 말을 일부러 모질게 해서 적을 많이 만들면서도 정에 약한, 위악적인 인물이다. 길고 구차한 삶보다는 짧고 화려하고 당당한 삶을 원했던 그는 요즘 구차한 삶쪽으로 노선변경했다. 그의 모델이 되었다던 모 작가에겐 껄끄럽겠지만, 어쨌든 극중의 석경은 뜻은 함께 할 수 없더라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조만간 끝날 것이라 생각하며 시청 권장 리뷰를 안썼었는데 꽤 오래하는구나. 중간인지 끝물인진 잘 모르겠지만, 드라마 DVD라도 나오면 챙겨볼만한 재미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매번 죽음의 위기에 빠지기 때문에 스릴감 넘친다.) 근데 시청률이 한자리를 오르내린다니 눈물이. ㅠ_ㅠ

2006.7.17. 닭의비행.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Posted 2006/07/17 23:18, Filed under: 영화와 TV

스폰지 하우스에서 하는 일본영화제에서 제목이 유독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는데 내용도 재밌다고 해서 보게 됐다. 이런 영화들은 일반 영화 포털에 사진이 잘 안올라와있어서 말이지, 다른 블로그에서 살짝.

앳된 전업주부 스즈메. 남편은 해외 근무 중이고, 매일 전화해서 거북이에게 밥을 잘 주고있느냐고만 묻는다. 거북이와 둘이서 망망대해 고립된 섬처럼 살아가는 그는 원래의 밍밍한 성격에다 주부우울증까지 겹쳐 자신의 존재감 자체를 의심하게 된다. 날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고 날 기억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도 없이, 난 존재하기나 하는 건가? 남들에겐 내가 안보이는 게 아닐까?

그때 그를 구제해주는 게 스파이 모집 광고이다. 하는 일 없이 여전히 스파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스파이 부부는 스즈메에게 정체성을 부여하고, 해야할 일과 묵직한 책임감을 덤으로 얹어준다. 장난같은 스파이 임무를 통해 그의 모든 일상은 재해석되고, 전과 거의 다름없는 환경 속에서도 의미를 찾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이 조금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사실 이 영화는 너무 진지하게 보면 안되고, 유치한 개그들을 즐기면서 봐야 한다. 2005년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살짝 의심될 정도로 조잡한 듯하면서도 때때로 화사하고 과장된 화면. 일본은 만화가 발달해서인지 (아니면 이런 종류만 수입하는지) 만화적 개그가 다른 영역에까지 차고 넘치는 것 같은데, 이 영화의 개그도 상당히 만화적이다. 쉬지않고 계속 개그를 시도하기 때문에 불발탄만 나면 상당히 썰렁한 영화가 될 것 같은데, 다행히도 나와의 싱크로율은 80%. 미용실 아저씨 춤추는 거랑 공안부 아저씨 철봉 체조 하는거랑, 몇 군데만 안웃었다. 영화를 보고나면 일본식 라면을 먹을 수 밖에 없는데, 영화에서 구미가 잔뜩 부풀었던 탓인지 막상 먹으니까 그냥 그랬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영화 만들면 망할래나? 본전 못뽑겠지? 정리하자면 재미있었다는 뜻이다. 집안을 그렇게 원색으로 꾸며놓고 눈에 안띄기를 바라다니, 네 이놈 스즈메.

근데 그는 아직 20대 어린 나이인데 말이다. 한 가닥 희망이 생기긴 했다지만 평생 그렇게 견디면서 살 수 있을까? 남편이 돌아오고 자식을 낳고 사람들이 자신을 필요로 하게 되면 그걸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서 몇 십년을 버텨낼 수 있을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자신의 가치를 잡지 못하며 살아간다는 건 굉장히 견디기 힘든 투쟁인데 말이다.

2006.7.17. 닭의비행.

에세이스트의 책상 (배수아)

Posted 2006/07/17 22:21, Filed under:
소설과 담을 쌓고 살아온지라 배수아를 접한 것은 배수아 원작, 변병준 만화의 [프린세스 안나]였다. 소녀적이고 칙칙한 그 만화의 느낌은 매우 좋았었는데 어느 만큼이 원작자의 몫이고 어느 만큼이 만화의 몫인지는 원작을 읽지 않아 여전히 알 수 없다. 친구가 빌려주어 [에세이스트의 책상]을 읽게 됐는데 "음. 소설이란 이런 것인가?" 하는 소감을 갖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나'와 'M' 두 사람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거의 거울에 비친 자아나 다름이 없다. M이란 것이 결국 나와 지독히 비슷하고 내가 동경하는 어떤 특질을 가진 이상형인데, M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만큼 외곬수로 자기 자신만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와 대비되는 대중에 대한 혐오도 드러난다.

유시진이나 권교정의 만화에도 이런 "자기 자신 또는 동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등장하는데, 유시진이 좀더 강한 편이고 권교정은 그보다는 폭넓게 고루 인간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만화에서는 자기애가 어느정도 유쾌하고 부드럽게 희석되어 있는데 반해 [에세이스트의 책상]에는 (그리고 몇몇 리뷰를 읽어보면 작가의 다른 소설도 비슷할지도 모르겠는데)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나있다.

솔직히 나는 자기애와 군중에 대한 혐오를 어느정도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결국은 독특한 사람이란 없고 자신도 어떤 타입의 동질한 군중 중 한명일 뿐인데, 군중에 대한 혐오가 강하면 언젠가 자기 자신의 흔함을 발견하는 순간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한 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고, 단지 너무 교통과 정보가 발달한 세상에서 한 눈에 수천명을 볼 수 있는 게 죄다. 덜 익숙해서인지는 몰라도 흔한 인간 100명보다도 독특한 인간 100명이 군중으로서 훨씬 더 혐오스럽다. 어쩌면 희미한 개성이란 과도한 정보의 세계에서 타인의 공간을 덜 침해하는 집단적인 배려가 아닐까?

내가 소설을 신기해한 것은 이런 "자기애와 타인 혐오"가 영화나 만화 등이라면 아마 수용되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기 때문이다. 배수아는 제법 메이저한 작가로 알고 있는데, 소설 독자들은 그런 태도를 좋아하나보지? 작가의 자기애의 범주에 대부분의 독자들은 속해있지 않을텐데, 대부분의 독자는 자신이 작가와 동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Sex and the City]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이 뉴욕에 살지 않고 멋진(내 취향을 아니지만 -_-) 남자들과 데이트를 즐기지도 않으며 하루 몇 시간 일하지도 않으면서 비싼 구두를 살 월급을 받진 못하지만 그것들 롤 모델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처럼, 한비야의 여행기를 읽는 사람들이 대부분 험한 오지를 여행하는 대신 방 안에서 그의 책을 읽는 것처럼, 이런 종류의 소설도 하나의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M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현실적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마음만은 나도 M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아마 '나'와 'M' 같은 인간을 좋아하고 동경하는 사람이 이 소설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난 아니다. 난 그런 특질을 우러러보지도 않고, 그다지 친구로 두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면 게임 끝.

2006. 7.17. 닭의비행.


에세이스트의 책상
배수아 저 | 문학동네 |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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