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최전선은 사실인 것 같고, 인문학을 꼭 만나는 것 같지는 않다. [토머스 헉슬리]에서 인문학이 지배하는 세상에 과학이 틈바구니로 도전장을 냈다면, 이 책에서는 과학이 이빨빠진 호랑이인 인문학을 깔아뭉개는 듯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시대가 지나 전세 역전인가.

책을 지은 사람은 전문적인 과학편집자로 엣지(http://www.edge.org)를 운영하고 있고, 각자의 영역에서 첨단을 달리는 현재의 과학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책으로 구성했다. 내용이 어렵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짧은 내용 속에 핵심적인 내용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난 과학이든 미술이든 인문이든 최신의(edge) 것들에 목마르단 말이지. 쉽게 쉽게 쓰여진 컴필레이션 책들은 대개 이미 오래되고 안착된 것들만 다루는 경향이 있어 마음에 안든다.

책은 1부 호모 사피엔스, 2부 기계 인간, 3부 진화하는 우주들로 나누어져 있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나누고 보니 내가 인간, 기계에는 평소 관심이 있었지만 우주는 정말 (멍) 언제 뵈었는지 모르도록 관심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주 부분은 읽어도 잘 이해가 안되더라. 반면 인간 영역에서는 [빈 서판]의 카리스마 스티븐 핑거 아저씨를 재회했고 (아는 내용인데 이 책에선 이해가 어렵더라. -_-;) 언젠가 읽어보고 싶은 [총 균 쇠]의 제레드 다이아몬드도 만났다. 기계(컴퓨터과학) 부분에선 [기계의 아름다움]으로 어쩐지 정이 든 데이비드 겔런터를 만났다. 우주 부분에선 우주가 팽창과 수축을 거듭하고, 끈과 고리가 교차하더라.

하여간 뉴튼과 아인슈타인에서 벗어나 지금 과학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한 나로서는, 개별적인 내용은 딱히 잘 이해했다고 보기 힘들지만 여러 스타 과학자들과 안면을 익히고 참고할만한 책 목록을 얻는, 어느정도 유용한 책이었다.

그리고 책의 부록같은 뒷 부분에는, 이 책의 편저자에게 동의나 반박을 보내온 각계 인사들의 편지가 들어있는데, 과학과 인문사회학의 신경전은 빅토리아 시대나 지금이나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재미있었다. 자기들끼리의 논쟁이라 언어가 상당히 추상적이었다. [루쉰, 욕을 하다]를 봤을 때의 뉘앙스는 느끼지만 머리가 엉키는 기분과 비슷.

★★★☆ 매끄럽게 다듬어진 편은 아니라서 감점.

2007.2.19. 닭의비행.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존 브록만 엮음, 안인희 옮김/소소

세 바퀴로 가는 과학자전거 (강양구)

Posted 2007/02/19 23:00, Filed under:
청소년 대상으로 쓴 책인데 그래도 사봤다. 오늘날 과학이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충분히 있지만, 실제로는 나쁜 일, 불공평한 일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는 것, 과학기술이 사용됨에 있어서 사회정치적인 면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동화된 기계가 초기에는 불량도 많고 더 비효율적이었지만, 자본가는 당장의 이익보다는 장기적으로 숙련노동자의 기를 꺾는 데 더 역점을 두었기 때문에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게 되었다든지, 전기 대기업들의 영향력으로 더 우수한 가스 냉장고 대신 전기 냉장고가 보편화되었다든지 하는 사례들을 볼 수 있다. 원자력, 석유, 광우병, 환경 호르몬 등의 환경 문제들에 대해서도 한꼭지씩 볼 수 있다.

초반엔 꽤 재밌었는데 중후반으로 가면서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 많이 나와서 좀 재미없어졌다. 잘 생각해보니 내가 원하는 것은 사회의 역학관계가 과학기술의 사용을 좌우하는 그런 부분이었는데, 뒷 부분은 환경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 중심으로 둘이 미묘하게 다르다. 후자는 시민 단체들의 이슈와도 많이 겹쳐서 좀 상투적인 느낌이 들고.

각 꼭지마다 있는 책 소개는 내게 읽을만한 책의 목록을 한다스 안겨주었는데, 꽤 유용할 것 같다. 작가는 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

★★★☆ 절반 정도는 재밌게 읽었는데, 아무래도 컬럼 형식의 책이라서.

2007.2.19. 닭의비행.

세 바퀴로 가는 과학자전거
강양구 지음/뿌리와이파리

전쟁대행 주식회사 (피터 W. 싱어)

Posted 2007/02/19 22:12, Filed under:
어떤 경로를 통해 이 책이 있는걸 알았는지 영 기억나지 않지만, 근래에 읽은 중에 가장 감동적이었던 책. 이 주제에는 작년 KBS 스페셜 "전쟁을 생산한다 - 민간군사기업"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KBS 스페셜은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한 게 아닐까 싶은데, 보는 관점은 책이 더 긍정적이다.

이 책은 전쟁과 기업의 결합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책이다. 세상이 다 그렇고 그렇지 뭐...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라고 해도 이 디테일하고 입체적인 정보를 다 접하고 나면 시야가 한층 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TV에서 봤을 때 "저런 나쁜 놈들..."이란 느낌이 강했다면, 책을 읽으면서는 그 오묘하고 진취적인 세계에 경탄을 하게 된다. [하얀 거탑]의 장준혁 행진곡을 듣는 느낌이랄까.

요즘에는 전쟁과 군대가 국가에 의해 독점되지만, 사적인 군대는 늘 역사 속에서 함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유럽의 용병들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봐도 지방 호족이 사병을 가진다든가. 사적 영역에서의 군대는 늘 있어왔지만, 자본주의와 기업의 발달과 함께 이 영역에서도 운영 체계가 고도화되었다. 다국적 기업과 아웃소싱, 주주의 이익, 복잡한 지분 구조 같은 것 말이다.


무기를 만드는 회사나 개인적으로 돈을 받고 뛰는 용병은 전체 시스템의 아주 작은 부분이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려면 군사 공급 기업, 군사 컨설턴트 기업, 군사 지원 기업으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군사 공급 기업은 대표적으로  Executive Outcomes가 있는데, 작고 전문화된 특공대에서 장교, 비행기까지 포함된 군대를 박스채로(?) 빌려주는 역할을 한다. 가령 주문이 있을 경우, 바로 목록에 있는 프리랜서 군인들을 소집해서 군사를 꾸린 뒤 임대한 비행기를 대령해서 세계 어딘가에 몇주 내에 투입할 수 있다. 무기나 전술에도 객관적인 수준 격차가 있고, 수준높은 용병은 아프리카 소국의 아마추어 반군을 단번에 진압하고 정치적 판도를 바꿔놓을 수 있다. 항공, 첩보, 정보전 같은 분야도 아웃소싱이 가능하다.

군사 컨설턴트 기업은 대표적으로 MPRI가 있는데, 직접 나가서 싸우지는 않지만 특정 목적을 위한 전략을 짜주거나, 한 나라의 군대 전체를 선진화된 시스템으로 개조해주는 역할도 할 수 있다.

군사 지원 기업은 대표적으로 Brown & Root가 있는데, 군수 물자를 날라다 주거나 급식/의료를 제공하고, 필요하면 대대적인 군사 기지, 포로 수용소도 건설해주는 등 싸움 자체를 제외한 모든 부분을 서포트해준다. 특이하게도 평화적인 목적의 UN 같은 국제기구의 원조 사업, 지뢰 제거 사업, 난민 구호 등도 아웃소싱 받아서 한다.


책을 보면 이런 체계화된 서비스가 어느덧 감동적인데, 저자는 이런 아웃소싱을 맡길 때의 단점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면 이 책은 전쟁의 사영화가 꼭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잘 아웃소싱할 것인가를 결정하는데도 도움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경영적인 결단에 있어서는 일반 기업의 아웃소싱 결정과 비슷하다. 가령 비용을 절감하려고 아웃소싱을 했지만, 그 품질을 감독하기가 어렵고 비용은 점점 이끼가 끼어 늘어난다. 나중에 아웃소싱을 철회하려고 해도 내부적인 수행 능력은 이미 잃어버렸고, 다른 기업으로 바꾸기에도 너무 위험이 커서 결국 코꿰게 된다. 한쪽에서 무리하게 돈을 써서 전쟁 기업을 불러들였을 경우, 대치하고 있는 다른 쪽도 결국 출혈 소비를 하게 되고, 분쟁중인 소국에서 가치있는 천연자원(다이아몬드 광산 등)을 헐값에 넘기게 되는 것은 이런 상황이 존재한다.

정식 군대를 전부 쓰는 대신 민간기업에 아웃소싱을 맡기는 것은 정치적으로 꽤 큰 차이를 보이는데, 가령 군인 만 명을 파견했다는 것과 군인 오천 명(+민간 병참 기업 오천 명)을 보내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국민들에게 굉장히 다르게 보인다. 민간인이라는 것은 결정적일 때 단점이 되는데, 전투 상황이 정말 안좋아졌을 때 도망가는 것을 막을 구속력이 없고, 전쟁 중 범죄를 저질렀을 때 군법으로 처벌이 불가능하고 국적도 뒤죽박죽이기 때문에 현지 법으로도 처벌이 어렵다. 민간 기업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그 내부정보를 볼 권리가 없고, 기업 구조가 복잡해서 책임자를 찾기도 어렵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우리나라의 징병제와 주한미군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데, 뭐랄까. 한미합동 군사훈련이 고맙게 느껴진다든지, 징병제를 폐지하면 정말 우리나라의 국방력이 무너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 등. 전쟁은 애국심과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인 지표인 돈과 기술격차의 문제라는 느낌이 물씬 든다. 전술과 무기기술 면에서 첨단에서 점점 뒤떨어지면 정말 안될 것 같은, 마치 S전자를 국가적으로 밀어주어야만 하는 그런 느낌.

그리고 김선일 등 이라크 전에서 위험에 빠졌던 한국 민간인들. 명백히 미군의 병참 업무를 수행했을텐데, 민간인으로 보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이지 싶다. 교민, 기자, 평화운동가 등을 외교관이 보호해야 하는 것과 달리, 외교관이 군인을 보호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 않나? (교민과 군인의 경계가 모호하긴 하지만) 그런 사건이 있을 때 좀 더 사회적으로 군사 기업에 대해 알고 넘어갔더라면 좋았을 것 같지만, 아쉽게도 "사람이 죽다니 안타깝다" 이런 식으로만 다루어졌던 것 같다.

★★★★★

2006.2.19. 닭의비행.


전쟁 대행 주식회사
피터 W. 싱어 지음, 유강은 옮김/지식의풍경


몇 권의 책을 염두에 두고 서점에 갔다가 다른 책은 다 마음에 안들어 제끼고 충동구매로 샀던 책. "과학자"라는 것이 직업군으로서 하나의 career path를 갖추지 못했던 시절에 과학자라는 직업을 확립해나갔던 사람을 다루고 있다. 일대기라기보다는 과학자의 영역과 선을 긋기 위해 논쟁했던 인접 영역들 - 가정, 신사들의 커뮤니티, 인문/문화, 종교, 노동 - 과의 관계를 하나하나씩 다루고 있다. 나는 인문학적 커뮤니케이션에 익숙치 않은 탓인지 "A가 아니라 B라니까"라는 식의 미묘한, 개념적 차이 설명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래서 사실 읽어도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는 부분이 많다.

어쨌든 토머스 헉슬리가 의사의 길을 가려다 말고 과학자의 길로 조심스럽게 들어섰을 때, 그는 전도유망한 젊은 과학자가 아니라 미래가 불투명한 청년이었다. 비포장 도로랄까. 그 업계에 정착하여 비교적 사회적 지위도 있고 먹고 사는 롤 모델이 몇 있기는 했으나,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되풀이되어 적용될 수 있는지는 막막했다. (이건 가히 자우림을 바라보는 인디밴드 입문자와 같지 않은가.)

하여간 그 시대에는 신대륙으로 장기항해 떠나는 배들도 종종 있고 하여, 항해를 따라가서 신기한 동식물을 채집하고 이름을 붙이고 즐거워하고 (비록 배의 사람들은 모두 무시했지만) 다시 과학자들 커뮤니티에 가면 자랑하고 하는 박물학(?)이 가장 잘나가는 과학 분야였던 것 같다. 보다 직위가 있는 과학자는 박물관 관리직을 꿰차고, 거대한 동물의 뼈모형이나 박제를 만들어 일반 관중들의 감탄을 받는 일도 했다.

이 당시는 학술적인 저널들이 태동하던 시기였는데, 토머스 헉슬리는 언론이나 대중 강연을 통해 과학적 저술에 속하는 것과 속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고, 때론 전문 과학자가 아닌 사람이 과학글을 쓰는 것을 폄하하기도 했다. 또한 인문 중심이었던 당시의 학교 커리큘럼에 과학을 애써서 끼워넣는 데도 일조했다. 그는 과학적 전문성을 기반으로 자신이 사회 전반에 대해서도 발언할 수 있는 엘리트라고 생각했으나, 말년에 노동운동이 발전하면서 "쓸데없이 끼어들지 말고 실험실로 돌아가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현재의 과학자의 삶(박사학위를 받고 논문을 쓰고 교수가 된다든지)과 당연하게 끼워져있는 학교의 과학 커리큘럼, 과학을 하는 방식(실험과 전문 저널의 논문 등) 등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지 그 초기의 형성 과정을 살피는 책이다. 150년쯤 지난 현재, 과학과 인문사회학이 그 경계를 두고 어떻게 치열하게 싸우는지(?)를 엿볼 수 있는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랑 같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토머스 헉슬리의 일가는 여럿 과학계에서 대성했는데, [멋진 신세계]의 올더스 헉슬리가 토머스 헉슬리의 손자란다.

★★★★

2007.1.17. 닭의비행.

토머스 헉슬리
폴 화이트 지음, 김기윤 옮김/사이언스북스

차베스, 미국과 맞장뜨다

Posted 2006/12/24 13:30, Filed under:
아는 분이 이 책에 참여했다길래 덥썩. 중남미는 잘 알지는 못하지만 늘 호감 지역으로 관심갖고 있다. 아프리카에 별 관심이 가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

요즘 남미 지역에선 반미 좌파 독재자가 대세인가보다.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카스트로는 쿠바 대통령, 또 그런 식으로 친한 사람들이 몇 명 있는 것 같다. 고립당한 독재 국가로, 또한 대안적인 사회로 근래에 자주 언급되는 것은 쿠바 쪽인데, 이 책은 베네수엘라에 관한 내용이다.

책의 절반 정도는 쿠테타 과정에, 나머지 절반 정도는 집권한 뒤의 정책들에 할애되고 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가장 놀란 부분은 대부분의 사건이 2000년대에 벌어졌다는 것이다. 분위기는 박정희 시절인데 말이지. 군부에서 쿠테타를 일으켰다 실패, 이후 선거로 다시 정권을 잡은 뒤, 헌법을 갈아엎으며 기득권을 축출하고 기득권과 외국 자본으로부터 석유 권력을 빼앗는다. 기득권은 수긍하지 못하고 몇 번의 전복 시도를 꾀하지만 아직까지 실패. 절차적 민주주의는 대부분 무시. 이건 거의 박정희나 전두환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지금, 사회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반겨줄 수 있을까? 그의 "사회 정의"는 다른 사람들의 사회 정의가 아닐 수도 있는데. 그리고 의도의 선함이 결과의 선함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리고 차베스 정권이 집권을 한 뒤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개발 독재가 아니라 비개발 독재라고 해야할까, 그런 쪽으로 이어진다. 미국에 종속되어 있는 무한성장 모델 - 석유를 무절제하게 생산하고, 엘리트 기득권층에게 이윤을 몰아주며, 없는 자들은 기본 의료/교육도 받지 못하는 - 에서 다소 소박하고 풀뿌리적인 모델 - 석유 공장을 일반 노동자들에게 맡기고, 동네 보건소마다 의사가 있고, 학교에선 사람들에게 필요한 농업 등을 가르치는 - 로 바꾼다. 쿠테타에는 별로 동조되지 않지만, 이런 대안적 사회 모델에는 나도 목마르다.

좋았던 옛시절, 시골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 여자아이는 중등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을, 동네 훈장님들이 모든 도덕적 판단에도 권위를 가졌을지도 모를, 이웃끼리 서로 잘 알고 지내야 하고 모난 사람은 동네에 발붙이기도 어려웠을지 모를 그런 따뜻하고 정겨운 고향 마을은 싫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남들이 허구의 따뜻한 고향 마을을 묘사하는 것을 보면 토나온다.

그렇지만 미래로는 가고 싶다. 미국 유학을 쉽게 가기 위해서 교육 체제를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땅에서 필요한 공부를 대학가서 할 수 있는 것, 의사가 남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한 구성원인 것, 진단없이 더 강한 개발만 하는 대신 섬세한 레벨에서 꼭 필요한 변화에 대한 진단이 내려지는 것. 우리의 과거가 아닌 미래가, 더 섬세하고 작고 자연스러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버리지 못하겠다.

그리고 이건 나도 확실히는 모르는 건데, 중남미가 요즘은 굉장히 못사는 이미지로 우리에게 알려졌지만, 막상 중남미의 역사를 알고 보면 꽤나 선진적이라는 사실. 우리가 2000년대에 왈가왈부하는 FTA도 중남미는 오래전에 했었고, 사회복지제도는 그보다 더 전, 우리나라가 IMF때나 검토했던 금융개방도 중남미는 오래전에 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금융위기도 우리보다 빠르고, 신자유주의와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의 몰락도 우리보다 먼저.

지금 중남미가 못살기 때문에 우린 중남미가 우리의 2-30년 전 과거라고 느끼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어쩌면 우리의 10-20년 후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어쩌면 미래에 우린 더 적은 음식을 먹고, 더 소박한 집에 살고, 더 적은 자동차를 굴릴지도 모른다. 오래된 미래, 뭔가 묘한 느낌이 든다.

★★★☆ 서술이 좀 편파적인 것 같지만, 흔치않은 중남미 관련서적, 입문용으로 좋음.

2006.12.24. 닭의비행.

차베스 미국과 맞장뜨다
베네수엘라 혁명 연구모임 지음/시대의창

나비효과

Posted 2006/11/12 21:17, Filed under: 영화와 TV
개봉할 때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으나 아직까지 안보고 미루고 있었던 영화. 집에서 볼 비디오를 고를 때는 늘 머리를 무겁게 하지 않는 로맨틱 코미디를 고르게 된단 말이죠. 어쨌든 TV에서 해주길래, 또 한번 지나쳐보낼까 말까하다 봤다. 보길 잘했다.

내가 이 영화에 대해 알고있던 이미지는 "두뇌 게임"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 여러개의 현재를 오가는 이 영화의 구성을 볼 때 그 말이 맞기는 하다. 영리한 영화다. 그렇지만 보고 나서도 한참 잊혀지지 않는건 이 영화가 생각지 못하게 굉장히 감정적인 영화라는 점이었다. 애착과 죄책감. 여러 번의 엇갈리는 선택과 후회들 속에 죄책감이 가슴에 사무친다. 주인공 에반(애쉬튼 커처 분)이 자기 자신만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이렇게 혼돈스런 시공간 속에서 헤멜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정신병원에 있는 아빠, 아이들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이웃, 어린아이들의 짖궂은 장난이 만들어낸 끔찍한 사고.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네 아이들의 기억은 온통 불운한 것들로 일그러져 있다. 끔찍한 부분을 잊어버리는 기억상실, 그리고 어머니의 보호 속에 어린 시절로부터 격리되어 무사히 자라난 에반은 지나간 일기를 읽으며 과거를 기억하고, 자신이 불우한 어린시절과 함께 묻어버리고 온 친구들의 불행한 현재를 만난다.

사실 그 자신에게는 지금도 그리 나쁠 것이 없었다. 과거 따위 되돌아보지 않으면 되는 것. 애틋했던 풋사랑 따위 눈감고 귀막아버리면 되는 것. 그렇지만 죄책감 때문에, 그는 첫사랑 켈리(케일리이?)를 구하기 위해 과거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한 순간에 손을 댈 때마다 걷잡을 수 없이 현재가 변해버리는데, 정확히는 항상 모든 것이 더 나빠지는 것은 아니었다. 좀 더 나아지기도 하고 좀 더 나빠지기도 하는데, 매번 희생되는 사람이 달라진다. 남들은 더 고통스러워지고 자신은 원상복귀되는 상태에서 안주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자신을 희생시켜서라도 친구들이 행복한 모습을 볼까 싶기도 하다. 어떤 선택을 해도 슬픔과 죄책감,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두 가지 엔딩이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본게 긍정적인 엔딩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이상한 시공간에 갇혀, 아들의 운명을 예견하며 삶을 마감했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여전히 많이 마음이 아프다. 반복되는 여러 개의 현재 속에서도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있는 아버지를 참 많이 사랑했던 것 같다. 추상적인 슬픔을 가슴에 맺히게 전달하기는 쉽지 않은데.

★★★★★ 두뇌 게임 스릴러보단 [장화 홍련]이랑 더 비슷한 느낌을 주는 영화.

2006.11.12. 닭의비행.

바보 만들기 (존 테일러)

Posted 2006/11/09 21:53, Filed under:
참 좋은 부제를 가진 책이다.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 맞다, 난 왜 이렇게 멍청할까 하는 생각에 책을 집어들게 된다. 공교육을 비판하고 대안교육을 꿈꾸는 책으로, 저자의 강연을 모은 책인 것 같다. 아마 평소 공교육에 대해 많이 생각한 사람일수록 얻어가는 게 많을 것 같다. 난 공교육에 대해 크게 부닥치며 살고 있지도 않고, 많이 생각하지도 않아서인지 그렇게 피부에 와닿지는 않는다.

확실히 학교의 많은 면이 쓸모없었고, 많은 면이 나의 무엇인가를 오히려 깎아냈으며, 많은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종류의 고통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니 굉장히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스무살이 넘어서까지 교사의 작은 표정 변화를 살피며 마음 졸이는 학생들. 게다가 서른살에도. -_-; 교사가 나를 똑똑하다고 생각해야 비로소 나 자신을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교사가 나를 한심하다고 생각하면 나도 스스로 바보라고 생각하는 이런 어이없는 버릇은 평생 간다. 교사에게 "당신의 기준은 틀렸어! 당신은 평생 모르겠지만 난 존니 잘났다구."라고 말할 수 있는 학생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정부를 비판한대도 무정부상태에서 살고 싶어하지 않듯이, 아무리 공교육이 이상하다한들 공교육이 무너지기를 바랄까? 나는 정말 아이들은 부모들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설령 좆같더라도 여러가지 환경과 관계를 겪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부모/교사, 시스템, 커리큘럼, 친구들, 그룹 안에서의 상대적인 위치를 겪어보며 자신의 위치를 찾아나가야 한다. 물론 공교육의 커리큘럼이 획일적이라는 데에 저자는 비판하고 있지만, 부모와 고립되어 어린시절을 보내야 한다면 아이는 더 좋은 스승이나 친구를 찾아볼 기회를 잃게 된다. 심각한 거 아닌가? 그리고 쓸데없이 길어보이는 수업시간은 사실 아이들을 노동으로부터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 ★★★

바보 만들기
존 테일러 개토 지음, 김기협 옮김/민들레

씬시티 3 (프랭크 밀러)

Posted 2006/11/05 09:58, Filed under: 만화
미국만화 중 유명하다는 [씬시티], 영화가 나왔을 때 보려고 했으나 번번히 안보게 되는 [씬시티]. 대표로 3권만 사봤다. 교보에 갔더니 19금이라고 진열도 안해놓고 창고에서 살짝 꺼내다주니 이런 안타까울데가! 올해 중에 7권을 모두 낸다고 하는데, 19금이란 이유로 전국 곳곳의 서점에서 봉쇄당하고 있다면 그 미래가 참으로 걱정된다.

예전에 영화가 나왔을 때, 영화 장면과 대비된 몇몇 컷들을 보고 그림체에 많은 기대를 했었는데 막상 열어보니 그 정도는 아니었다. 좀 더 명암이 명료하고 각이 잡혀있을 줄 알았는데, 슥슥 그린 붓터치가 뭐랄까, 한국의 아저씨들 만화(?)를 연상시켰다. 전형적인 미국만화 그림체이기도 하면서.

사실 재미있는 것은 작품 전반을 흐르는 비장미를 압도하는 느끼함이었는데;;; 마초적인 아저씨들과 섹시한 언니들의 향연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장문의 비장한 네레이션은 정말 나에겐 문화적 충격! 나름 재미있었다. 그러나 미국 아저씨 만화라는 장르를 느껴보려는 게 아니라면 그냥 그 작품 자체만으로 읽기엔 쉽지 않을 듯 하다. 문화적, 시대적 장벽이 상당해서.

만화가 김수박이 글씨를 썼다고 들었으나 본문 텍스트는 다 고딕체고, 화면에 나오는 그 뭐냐 "퍽" "엇" 이런 것만 손글씬데, 김수박 님의 평소 글씨맛이 살아나지 않는다.

한 권에서 끝나는 서사적 완결성은 꽤 훌륭하다. 디테일 좀 채우면 장편영화 한 편으로 만들어도 문제 없을 것 같은데, 만화 3편을 영화 1편으로 만들었었던 건가? 아마 7편 다 찍지는 못할 것 같아서 그랬나보지. -ㅅ- ★★★

씬시티 3
프랭크 밀러 지음, 김지선 옮김/세미콜론

대폭로 (폴 크루그먼)

Posted 2006/11/05 09:36, Filed under:
이름은 무척 익숙한 것 같지만 막상 뭐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고 있던 폴 크루그먼이 뉴욕 타임즈에 기고했던 컬럼들을 모은 책이라고 한다. 하루만에 훌렁 읽어버린 생각으로 빌려왔건만, 두쪽짜리 컬럼 하나하나 읽어내리기가 쉽지 않고 머리를 굴려야 했다. 비슷한 내용이 계속 반복되면서 뒤로 갈수록 읽기는 수월해진다.

부시와 미국 우익을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한국사람들이 그들을 미워하는 이유랑은 사뭇 다르다. 내가 잘 모르고 있던 미국 내부적인 측면을 볼 수 있어 좋다. 핵심을 말하자면 부시 정부는 1) 부자들을 위한 세금감면 정책을 꾸준히 밀어붙이고 있으며 2) 줄어든 세금 수입에도 불구하고 전쟁에는 돈을 쏟아붓고 있다. 3) 국가재정과 복지예산이 빵구날 게 뻔한데 문제 없다며 국민에게 사기치고 있다. 비슷한 내용이 계속 나오는 거 보면 크루그먼 아저씨는 답답해서 미칠 지경인 것 같다.

내용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컬럼보단 깔끔하게 정리된 설명문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컬럼이라는 특성상 도표를 그려주지도 못하고 교과서식으로 정리하지도 못하니 더 우회적으로 비꼬면서 말하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더 어렵다. 그러나 크루그먼의 반 부시 주장이 미국 내부에서 어쩐 위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느껴보려면 분노에 찬 그의 말투를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

대폭로
폴 크루그먼 지음, 송철복 옮김/세종연구원

랄랄라 하우스 (김영하)

Posted 2006/11/05 09:23, Filed under:
사실 에세이집은 내가 읽는 종류의 책이 아닌데 어쩌다가 빌려 읽게 되었다. 소설가 김영하의 미니홈피를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책 내부 편집도 (생각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미니홈피의 이미지를 가져다 썼다. 솔직히 베이직한 책 디자인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 사진도 손톱만하게 말고 좀 더 편안하게 본문 중에 배치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앞부분에 고양이 이야기 나올 때는 참 집중도 안되고 재미없었는데 (난 김영하 팬이 아니니까 그런 것까지 알 필요 없다) "길 위에서"랑 "문학 앞에서"는 읽을만하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문학 앞에서." "길 위에서"는 재미있는 부분도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과도하게 재치있는 문체가 편안하지 않달까. 요즘 인터넷 시대에 글을 읽다읽다 보니까 이제 아무 멋부리지 않은 담백한 문체가 땡긴다. ★★☆

랄랄라 하우스
김영하 지음/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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