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로를 통해 이 책이 있는걸 알았는지 영 기억나지 않지만, 근래에 읽은 중에 가장 감동적이었던 책. 이 주제에는 작년 KBS 스페셜 "전쟁을 생산한다 - 민간군사기업"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KBS 스페셜은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한 게 아닐까 싶은데, 보는 관점은 책이 더 긍정적이다.
이 책은 전쟁과 기업의 결합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책이다. 세상이 다 그렇고 그렇지 뭐...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라고 해도 이 디테일하고 입체적인 정보를 다 접하고 나면 시야가 한층 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TV에서 봤을 때 "저런 나쁜 놈들..."이란 느낌이 강했다면, 책을 읽으면서는 그 오묘하고 진취적인 세계에 경탄을 하게 된다. [하얀 거탑]의 장준혁 행진곡을 듣는 느낌이랄까.
요즘에는 전쟁과 군대가 국가에 의해 독점되지만, 사적인 군대는 늘 역사 속에서 함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유럽의 용병들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봐도 지방 호족이 사병을 가진다든가. 사적 영역에서의 군대는 늘 있어왔지만, 자본주의와 기업의 발달과 함께 이 영역에서도 운영 체계가 고도화되었다. 다국적 기업과 아웃소싱, 주주의 이익, 복잡한 지분 구조 같은 것 말이다.
무기를 만드는 회사나 개인적으로 돈을 받고 뛰는 용병은 전체 시스템의 아주 작은 부분이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려면 군사 공급 기업, 군사 컨설턴트 기업, 군사 지원 기업으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군사 공급 기업은 대표적으로 Executive Outcomes가 있는데, 작고 전문화된 특공대에서 장교, 비행기까지 포함된 군대를 박스채로(?) 빌려주는 역할을 한다. 가령 주문이 있을 경우, 바로 목록에 있는 프리랜서 군인들을 소집해서 군사를 꾸린 뒤 임대한 비행기를 대령해서 세계 어딘가에 몇주 내에 투입할 수 있다. 무기나 전술에도 객관적인 수준 격차가 있고, 수준높은 용병은 아프리카 소국의 아마추어 반군을 단번에 진압하고 정치적 판도를 바꿔놓을 수 있다. 항공, 첩보, 정보전 같은 분야도 아웃소싱이 가능하다.
군사 컨설턴트 기업은 대표적으로 MPRI가 있는데, 직접 나가서 싸우지는 않지만 특정 목적을 위한 전략을 짜주거나, 한 나라의 군대 전체를 선진화된 시스템으로 개조해주는 역할도 할 수 있다.
군사 지원 기업은 대표적으로 Brown & Root가 있는데, 군수 물자를 날라다 주거나 급식/의료를 제공하고, 필요하면 대대적인 군사 기지, 포로 수용소도 건설해주는 등 싸움 자체를 제외한 모든 부분을 서포트해준다. 특이하게도 평화적인 목적의 UN 같은 국제기구의 원조 사업, 지뢰 제거 사업, 난민 구호 등도 아웃소싱 받아서 한다.
책을 보면 이런 체계화된 서비스가 어느덧 감동적인데, 저자는 이런 아웃소싱을 맡길 때의 단점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면 이 책은 전쟁의 사영화가 꼭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잘 아웃소싱할 것인가를 결정하는데도 도움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경영적인 결단에 있어서는 일반 기업의 아웃소싱 결정과 비슷하다. 가령 비용을 절감하려고 아웃소싱을 했지만, 그 품질을 감독하기가 어렵고 비용은 점점 이끼가 끼어 늘어난다. 나중에 아웃소싱을 철회하려고 해도 내부적인 수행 능력은 이미 잃어버렸고, 다른 기업으로 바꾸기에도 너무 위험이 커서 결국 코꿰게 된다. 한쪽에서 무리하게 돈을 써서 전쟁 기업을 불러들였을 경우, 대치하고 있는 다른 쪽도 결국 출혈 소비를 하게 되고, 분쟁중인 소국에서 가치있는 천연자원(다이아몬드 광산 등)을 헐값에 넘기게 되는 것은 이런 상황이 존재한다.
정식 군대를 전부 쓰는 대신 민간기업에 아웃소싱을 맡기는 것은 정치적으로 꽤 큰 차이를 보이는데, 가령 군인 만 명을 파견했다는 것과 군인 오천 명(+민간 병참 기업 오천 명)을 보내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국민들에게 굉장히 다르게 보인다. 민간인이라는 것은 결정적일 때 단점이 되는데, 전투 상황이 정말 안좋아졌을 때 도망가는 것을 막을 구속력이 없고, 전쟁 중 범죄를 저질렀을 때 군법으로 처벌이 불가능하고 국적도 뒤죽박죽이기 때문에 현지 법으로도 처벌이 어렵다. 민간 기업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그 내부정보를 볼 권리가 없고, 기업 구조가 복잡해서 책임자를 찾기도 어렵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우리나라의 징병제와 주한미군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데, 뭐랄까. 한미합동 군사훈련이 고맙게 느껴진다든지, 징병제를 폐지하면 정말 우리나라의 국방력이 무너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 등. 전쟁은 애국심과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인 지표인 돈과 기술격차의 문제라는 느낌이 물씬 든다. 전술과 무기기술 면에서 첨단에서 점점 뒤떨어지면 정말 안될 것 같은, 마치 S전자를 국가적으로 밀어주어야만 하는 그런 느낌.
그리고 김선일 등 이라크 전에서 위험에 빠졌던 한국 민간인들. 명백히 미군의 병참 업무를 수행했을텐데, 민간인으로 보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이지 싶다. 교민, 기자, 평화운동가 등을 외교관이 보호해야 하는 것과 달리, 외교관이 군인을 보호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 않나? (교민과 군인의 경계가 모호하긴 하지만) 그런 사건이 있을 때 좀 더 사회적으로 군사 기업에 대해 알고 넘어갔더라면 좋았을 것 같지만, 아쉽게도 "사람이 죽다니 안타깝다" 이런 식으로만 다루어졌던 것 같다.
★★★★★
2006.2.19. 닭의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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