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긴 소설을 볼 때 이 책이 생각나는 이유는 '묵독'과 '낭독'에 대한 서술 때문이다. 묵독은 말없이 혼자 눈으로 책을 읽는 것, 낭독은 한 명이 소리내어 책을 읽고 함께 그것을 듣는 것이다. 요즘은 낭독이라는 것이 원체 예외적이라 TV나 작가행사에서 낭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참 뭥미? 싶은데. 허나 예전에는 낭독이 대세였으며, 20,30년대 이 시기를 기점으로 낭독이 묵독으로 차츰 변화한다는 것이다. 도서관은 조용해야 한다는 관념도 이때 등장함을 관찰할 수 있다고.
내용을 텍스트에 담는 것은 그 환경적 제약에 따라 여러가지 형태를 띤다. 기억만으로 지식을 전수해야 했던 전설 속 사제들의 시기에는 모든 지식이 가장 압축된 시에 가까운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을테고, 검열당하는 감옥에서 무엇인가를 남기고 싶었던 사람들도 가장 은닉되어 있으며 압축적인 시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창이나 낭독을 통해 이야기를 다 읽어주어야 했을 때는 적어도 목청이 나가지 않을 정도의 간결한 스토리텔링이 대세였을 것이며, 모두가 묵독으로 돌아선 현대에는 이제 길이의 제약이 거의 사라진다. 얼마든지 디테일하게 써라, 독자들은 알아서 읽을 것이다!
이건 내 의견이지만 어쨌든 현대 소설의 그 지난한 디테일과 길이는 묵독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소설을 잘 못읽는 이유도 그 때문. -_-; 어쨌든 고전 설화집 같은 것을 읽으면 "그는 뽀얀 피부와 앵두같은 입술을 가진 묘령이 아가씨에게 빠져 하룻밤을 지내고야 말았는데...!" 이런 따위의 간결한 직접서술문을 만나게 되는데, 이것이 은근 재미가 있다. 주인공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 모든 감정을 간접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없고, 이야기 진행이 무척 빠르다. 우연히 봤던 옛날 무성영화/초기 유성영화 같은 것에서도 그런 스토리텔링을 본 기억이 있는데, 한 20분 봤더니 주인공의 유년기부터 상승과 몰락을 연대기적으로 다 봤던 듯.
아니, 이것이 '3인칭 관찰자 시점'과 '전지적 작가 시점'의 차이...?! 역시 학교의 12년 교과과정엔 버릴 것 하나 없구나. 인쇄술와 교육의 발달, 묵독과 3인칭 관찰자 시점은 모두 붐! 한 시기에 이뤄졌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런 재미에 사람들이 문학을 공부하는지도 모르겠다.
Response :
0 Trackback
,
0 Comment
Trackback URL : http://www.plodpaw.net/tt2/trackback/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