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살아가는 속도
Posted 2001/09/05 23:11, Filed under: 사회와 기술컴퓨터가 사무실을 차지하고 우리가 많은 자료를 모니터 상에서 처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각각 소비하는 종이의 양은 과거 어느 때보다 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낭비 성향이 늘어난 인간의 죄가 아닙니다.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양의 자료를 읽어대고 있습니 다. 우리가 읽어대는 글들의 양에 비하면 우리는 종이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종이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시간에 비해서이죠.
오늘날 "개발된 사회"에서의 인간들은 많이 만들고 많이 씁니다. 이것을 두고 우리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고 많은 재화를 쓸 수 있으므로 풍족하고 행복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한편 시간에 밀려 만족감도 느낄 새 없이 재화를 먹어치워 버리는 만큼 불행하고 허무하다고 하기도 합니다. 10년 동안 한 대의 자동차를 사용하는 사람과 다섯 대의 자동차를 바꾸는 사람 중에서는 누가 더 행복합니까. 그리고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는 사람과 다섯 권의 책을 읽는 사람 중에서는 누가 행복합니까.
빠르게 사는 사람들은 느리게 사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일해야 합니다. 그 말은 같은 시간에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신 더 많이 소비할 수 있습니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물건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빠르게 사는 요즘의 사람들이 느리게 살던 이전의 사람들에 비해 더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행복? 그것은 아직도 확인되지 않은 사실입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정말 행복해진 삶인지 망설이고 있습니다.
답은 "수명"입니다. 빠르게 사는 요즘의 사람들은 느리게 살던 이전의 사람들보다 훨씬 긴 삶을 삽니다. 이것은 단지 사람들이 지구가 태양을 70 바퀴 도는 동안 계속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요즘의 사람들은 지구가 태양을 1 바퀴 도는 동안 훨씬 긴 "인간의 1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3배의 물건을 만들고 3배의 물건을 쓰고 3배의 쓰레기를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단지 우리가 방탕하고 탐욕스러워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3배의 긴 긴 "인간의 1년"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50살에 죽었다면 70살에 죽는 요즘의 한 사람은 옛날 사람의 삶에 비해 4배 정도나 긴 210 "옛날 인간의 1년"을 살고 죽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 사는 것이 사람의 행복이라면 지금은 단연코 예전보다 행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 사는 것이 불행이라면 그 반대이겠죠.
어떤 사람은 오래 살길 원하고 어떤 사람은 일찍 삶에 지치듯이, 어떤 사람들은 빠르게 살고 싶어하고 어떤 사람들은 느리게 살고 싶어합니다. 덜 일하고 덜 쓰면서 자신이 원하는 속도 속에서 행복을 찾고 싶은 것입니다.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속도에 자신이 떠밀리고 있다고 느낍니다.
왜 사람은 일주일에 3일만 일하는 대신 남들 반만큼의 옷을 사고 반만큼의 잡지를 보며 안정되게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드는 비용의 일부는 활동하는 양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요금이 매겨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시간과 거리, 두 가지 모두가 과금 체계에 포함되는 택시의 미터계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느리게 달려도 승객은 시간에 대해 돈을 내놓아야만 합니다. 사람이 살아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느리게 사는 사람이라고 해서 적게 먹고 사는 것도 아니며 남보다 싸게 집을 빌리지도 못하고 낮은 이자로 대출을 받지도 못하며 시간의 단위로 내는 전화 요금을 할인받지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느리게 사는 사람은 "지구의 시간"(지구가 돌고 빛이 진동하는 시간)에 대하여 훨씬 적게 소비하지만 "인간의 시간"(인간이 체험하는 시간)에 대하여는 오히려 더 많이 소비합니다. 인간의 생산량은 "인간의 시간"과 비례하는 개념이므로, 느리게 사는 사람은 같은 양의 일을 하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소비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재벌 2세가 아닌 다음에야 우리가 생산하는 것보다 많이 소비하는 것을 용납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생산성이 이자를 갚기 힘들 정도로 느리게 사는 사람은 사회로부터 무시받고 모욕받고 독촉을 받습니다. 이자를 갚지 못하는 회사는 문을 닫아야 하듯이 자신의 유지 비용을 벌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에 있지 않아야 한다고 세상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자율을 정하는 것이 사회이듯이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속도를 정하는 것도 사회입니다. 우리는 사회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사회의 "권장 삶의 속도"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2001.9.5. 닭의비행.
오늘날 "개발된 사회"에서의 인간들은 많이 만들고 많이 씁니다. 이것을 두고 우리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고 많은 재화를 쓸 수 있으므로 풍족하고 행복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한편 시간에 밀려 만족감도 느낄 새 없이 재화를 먹어치워 버리는 만큼 불행하고 허무하다고 하기도 합니다. 10년 동안 한 대의 자동차를 사용하는 사람과 다섯 대의 자동차를 바꾸는 사람 중에서는 누가 더 행복합니까. 그리고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는 사람과 다섯 권의 책을 읽는 사람 중에서는 누가 행복합니까.
빠르게 사는 사람들은 느리게 사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일해야 합니다. 그 말은 같은 시간에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신 더 많이 소비할 수 있습니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물건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빠르게 사는 요즘의 사람들이 느리게 살던 이전의 사람들에 비해 더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행복? 그것은 아직도 확인되지 않은 사실입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정말 행복해진 삶인지 망설이고 있습니다.
답은 "수명"입니다. 빠르게 사는 요즘의 사람들은 느리게 살던 이전의 사람들보다 훨씬 긴 삶을 삽니다. 이것은 단지 사람들이 지구가 태양을 70 바퀴 도는 동안 계속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요즘의 사람들은 지구가 태양을 1 바퀴 도는 동안 훨씬 긴 "인간의 1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3배의 물건을 만들고 3배의 물건을 쓰고 3배의 쓰레기를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단지 우리가 방탕하고 탐욕스러워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3배의 긴 긴 "인간의 1년"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50살에 죽었다면 70살에 죽는 요즘의 한 사람은 옛날 사람의 삶에 비해 4배 정도나 긴 210 "옛날 인간의 1년"을 살고 죽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 사는 것이 사람의 행복이라면 지금은 단연코 예전보다 행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 사는 것이 불행이라면 그 반대이겠죠.
어떤 사람은 오래 살길 원하고 어떤 사람은 일찍 삶에 지치듯이, 어떤 사람들은 빠르게 살고 싶어하고 어떤 사람들은 느리게 살고 싶어합니다. 덜 일하고 덜 쓰면서 자신이 원하는 속도 속에서 행복을 찾고 싶은 것입니다.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속도에 자신이 떠밀리고 있다고 느낍니다.
왜 사람은 일주일에 3일만 일하는 대신 남들 반만큼의 옷을 사고 반만큼의 잡지를 보며 안정되게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드는 비용의 일부는 활동하는 양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요금이 매겨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시간과 거리, 두 가지 모두가 과금 체계에 포함되는 택시의 미터계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느리게 달려도 승객은 시간에 대해 돈을 내놓아야만 합니다. 사람이 살아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느리게 사는 사람이라고 해서 적게 먹고 사는 것도 아니며 남보다 싸게 집을 빌리지도 못하고 낮은 이자로 대출을 받지도 못하며 시간의 단위로 내는 전화 요금을 할인받지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느리게 사는 사람은 "지구의 시간"(지구가 돌고 빛이 진동하는 시간)에 대하여 훨씬 적게 소비하지만 "인간의 시간"(인간이 체험하는 시간)에 대하여는 오히려 더 많이 소비합니다. 인간의 생산량은 "인간의 시간"과 비례하는 개념이므로, 느리게 사는 사람은 같은 양의 일을 하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소비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재벌 2세가 아닌 다음에야 우리가 생산하는 것보다 많이 소비하는 것을 용납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생산성이 이자를 갚기 힘들 정도로 느리게 사는 사람은 사회로부터 무시받고 모욕받고 독촉을 받습니다. 이자를 갚지 못하는 회사는 문을 닫아야 하듯이 자신의 유지 비용을 벌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에 있지 않아야 한다고 세상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자율을 정하는 것이 사회이듯이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속도를 정하는 것도 사회입니다. 우리는 사회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사회의 "권장 삶의 속도"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2001.9.5. 닭의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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