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그러니까 11월 21일 아침, 난 불길한 꿈에 눈을 떴다.
이 21일 일요일이 아니라 20일 토요일이라는, 이미 지나가버렸다는 것이었다. 눈을 뜨고 다시 확인해보니 차질없이 일요일. 난 원래 사소한 것에 스트레스받는다. -_-;; (그러니 진짜 스트레스를 주면 쓰러짐)
행사 시간은 낮 2시부터 12시, 만화가들의 공연 시간은 5시부터 7시. 그렇지만
모임이 있었기에 공연은 포기하고 저녁에 가기로 했다. 정모가 끝난 뒤,
로 향했다. 작가와 함께 삭아가는 팬클럽이라 미성년자가 없어서 대략 오케이!
블루문 호프의 입구는 매우 혼잡했다. 호프 안의 사람도 많았고, 입구에 몇몇 만화가분들도 나와 있었고,
님은 비디오 카메라 앞에서 무슨 인터뷰 중. 정신이 없어서 일단 돈을 내고 입장. 입장하면 음료수 한 캔과 기념 티셔츠를 준다. 음료수는 맥주,
.
들어가보니 어두운데 사람은 엄청 많고 정신이 한개도 없다. 게다가 일행이 6명인데 자리는 모두 차있는 상태. 약간 정신을 차리니 두 층으로 나누어진 공간과 무대, 서빙하는 사람들 정도는 대강 구분이 간다. 좌석 주변에서 얼쩡거리니 자리는 조금씩 나서 일행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나! 만화가들에게 싸인을 받는 무리들을 멍하니 보며 알아낸 것은 싸인 받을 곳이 없다는 것. 디카와 네임펜, 싸인받을 만화책 두 권을 챙겨놓고는 가방이 무겁다고 평소 가지고 다니던 수첩도 빼놨다. 행사 포스터는 이미 다 떨어졌다고 하고. 티셔츠에 싸인 받는 사람들을 보며 결단!
입구로 다시 가서 흰색으로 바꿨다. 그런데
티셔츠 바꿔준 사람이 마침 홍승우 님! 오예~하며 싸인을 받았다. 홍승우 님은 공연을 안하셨다고 한다. (어차피 놓쳤으니 또한 기쁜지라)
그리고 입구 밖으로 잠깐 나왔는데
강풀 님.
"오늘 정말 과로해서 피곤해요"라는 기색이 역력한 강풀 님을 혹사시켜가며 또한 싸인을 받았다. 친구가 싸인 받는 걸 기다리며 고개를 돌리는데 뒷편에 석동연 님. 강풀 님의 싸인을 다 받고 나니 이미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다시 호프로 들어가서 홀로 올라가는데
아직 계단에 정체 중인 석동연 님을 발견. 기쁘게 싸인을 받고, 일단 일행의 자리로 합류했다.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며 안주 시킨 것도 조금 먹고. 만화가분들은 곳곳에 "싸인해주세요" 인파에 붙들려서 정체 중이었는데 그래서 "
이제 싸인 금지, 서빙 위치로 돌아가주세요"라는 통제 방송이 있기도 했다.
경계 경보가 발령한 상황이었으나
옆 테이블에 고리타 님이 기념촬영 중이 아닌가. 일어나는 고리타 님을 나꿔채서 몰래몰래 구석에서 싸인을 받았다. (싸인 금지령 중에 고리타 님이 싸인해줬다는 거 이르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또 술과 안주 먹으며 노닥노닥. 사실은 [기동이](양영순)와 [트라우마](곽백수)에 싸인을 받기 위해 눈을 번뜩이며 두 만화가를 수배중이었다.
그러다 김미영 님 발견. 김미영 님의 싸인에 오늘의 모든 목적을 건 율겐 님을 위해 재빨리 달려가 제보하고 함께 김미영 님 앞에서 쪼로록 기다렸다.
서빙을 하고 돌아오시겠다던 미영 님을 오래도록 기다린 끝에 싸인을 받았다.
끝으로, 자원봉사자의 답변에 의하면
양영순 님은 집에 일찍 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곽백수 님은 무려 병원에 입원을!! (두둥. 맹장이라고 합디다)
그 외에도 서빙에 싸인에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만화가분들(그리고 수고하신 자원봉사자분들)이 많았는데, 내가 출판만화만 주로 보고 인터넷 만화계에 아직 입문하지 않은지라
"팬이에요"라며 달려가서 싸인 받기에는 양심에 가책이 느껴져서 그냥 가만히 구경구경만 했다. 아참,
실시간 상영 타블렛으로 그림그리기 쑈를 하신 석정현 님의 싸인도 받고 싶었으나 이제는 체력 소진으로 의욕 상실.
그렇게 대략 2시간 만에 체력을 소진한 뒤, 집이 먼 사람들을 위해 일찍 나왔다. 여기까지가 모든 행사의 취지와 개요가 빠진 싸인기. 왜 이렇게 길게 적었을까. -_-;;
자. 여기서 티셔츠 자랑. (실명 부분은 지웠음)
위에서 언급된 만화가분들에 대한 간단하고 주관적인 소개. 행사에 참여한 만화가 전체 정보를 보려면
이곳을 참고. (이렇게 정리해주시다니 감사)
홍승우: 내가 읽기엔 지나치게 건전한 [비빔툰]을 연재하시는 분. 근데 외모는 정말 건전하게 생기신 게 좋아. (박사과정이라고 하면 믿을 지경) 가끔씩이라도 오래 만화를 봐와서인지 마주치는 순간 "아뿔싸! 이렇게 반가울데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풀: 인터넷에서 유명한데 비해서는 내가 만화를 적게 본 것 같다. [순정만화]는 내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건전. 그러나 몸을 사리지 않고 찍으시는 사진들 때문인가? 만화가 아니라 만화가의 팬이 될 것 같은 느낌. (만화가의 아이돌화)
고리타: nKino에 연재할 때부터 좋아했다. 단행본으로는 [룸펜스타]가 있다. 예전엔 홈페이지 들락거리며 눈팅하기도 했는데, 중간에 인터넷 공백기를 거치며 멀어진 듯. 앞으로 종종 들를게요, 저 실망시키시면 안돼요.
석동연: 순정만화 잡지에는 드물던 네컷 만화가. [그녀는 연상], [얼토당토], [말랑말랑] 등을 연재했다. 나는 초기 작품들을 더 좋아했던 듯. 잡지에서 볼 때는 잘 몰랐는데, 티셔츠 위에 그려진 떡 그림이 더 이쁘다.
김미영: [야! 이노마], [기생충], [빌테면 빌어봐] 등을 연재. 만화 제목보다 "광년이"라는 캐릭터로 더 유명한 것 같다. 유머가 좀 불안정했는데, 재미있는 부분은 꽤 재밌다.
양영순: 유명한 데 비해서는 만화를 많이 읽지 않은 듯. 이 역시 내가 순정만화계에만 머물렀기 때문이다. [아색기가], [누들누드] 등이 유명한데 내가 정작 본 것은 [싸이케치]와 [기동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싸이케치] -_-b!! 역시 건전함과는 친해질 수 없는 나의 취향. 그림과 스토리가 모두 탄탄하여 기복없이 꾸준히 좋은 만화 그리실 수 있을 것 같은 분이다.
곽백수: [트라우마]가 인터넷에서 떴을 때 진작 봤어야 했는데, 나는 단행본으로 봤다. 역시 만화와 만화가 중 어느 쪽이 더 인상이 강렬한지 알 수 없는 경우. 트라우마 재밌다. 왜 하필 이런 날 입원을...-_-;
석정현: 순수회화쪽으로 그림을 잘 그리는 데 비해서 만화 쪽의 활동은 많이 안하신 것 같다. 단행본도 그래픽 프로그램 사용법. 그러나 내가 본 몇 편의 만화에서 본 석정현 님의 유머 감각을 믿고 있고, 러브툰 릴레이 만화에서도 그 실력을 발휘. 지나친 그림이 만화를 눌러버릴까봐 약간 걱정스러운 케이스.
적기 너무 힘들다. 나 어깨 결리고 점심 거를 위기에 처한 건 누가 위로해주나. =_=;;
인터넷 만화가들 중에 뜬 분도 있고, 아직 못 뜬 분도 있다. 불안정한 미래와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체된 분위기의 출판 만화쪽과 달리 인터넷 만화계가 활력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고, 만화가들끼리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좋았다. 독립운동도 유머가 없으면 오래 못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누가? 누군가 비슷한 증언을 했다고)
를 보면 앞으로 인터넷 만화를 세 배로 즐겁게 보실 수 있을 듯.
2004.11.25. 닭의비행.